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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목숨을 걸고 지키고 싶은 약속이 있나요?

 

 

꼬꼬무-故고미영
꼬꼬무 '故 고미영' 이야기 재조명

 


2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목숨을 건 약속 - 철의 여인과 매니저 김'이라는 부 제로 산악인 고미영과 김재수 대장의 그날을 조명했다.

 

 

'꼬꼬무' 고미영 x김재수 만남 다시 보기

 

 

 '꼬꼬무' 故고미영·김재수 대장 이야기 재조명

 

 

 

 

 

'꼬꼬무' 살아도 같이 죽어도 같이 다시 보기

 

 

2007년 봄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꾸린 산악인 김재수 대장에게 후원사의 제안이 들어온다. 여성 멤버를 원정대에 합류시키라는 것. 주인공은 암벽 등반 선수 고미영.

고미영은 국내 스포츠클라이밍 분야에서 최고의 선수였다. 그러나 제안을 받은 김재수 대장은 고민에 빠졌다. 스포츠클라이밍 선수가 고산을 등반하는 것은 단거리 선수가 마라톤에 도전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제안을 수락했지만 여전히 김재수 대장의 마음속에는 고미영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일주일 후 그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훈련에 적응도 빠르고 팀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것. 특히 정상에 오르겠다는 의지가 강한 고미영의 모습에 김 대장은 그와의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을 결정했다.

그리고 무사히 등정에 성공했다. 꽤나 잘 해낸 고미영은 김 대장에게 자신의 꿈을 밝힌다. 그의 꿈은 8000미터 14좌 완등. 14좌란 히말라야에 위치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14개의 봉우리를 뜻했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이곳은 신의 영역이자 죽음의 지대였다.

지금까지 여성 산악인들 중에 이를 성공한 이는 한 명도 없었고, 그는 누구도 쉽게 꿈꿀 수 없는 세계 최초의 꿈을 키웠다. 그 리고 김 대장에게 자신의 매니저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매니저란 산악인이 등반에만 집중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데 코스 연구, 스케줄 관리, 물품 확보, 등반 과정 기록까지 도맡으며 산악인과 함께 정상까지 올라가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고미영은 혼자 에베레스트에 도전했다가 경험 부족으로 실패해 경험 많은 김 대장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이미 은퇴할 나이였던 김 대장은 고미영의 부탁을 처음엔 거절했다. 하지만 고미영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다음 산까지만이 라도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김 대장은 딱 한 번이라며 제안을 받아들였고 보르드피크를 함께 올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김 대장은 어떤 사람의 꿈을 이루는데 일조하면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고미영의 여정에 함께 할 것을 결심하고 매니저가 되기로 했다.

이후 두 사람은 거침없이 14좌를 하나씩 정복해 갔다. 그리고 그런 고미영에게는 김 대장이 선물한 이니셜 M 목걸이가 항상 함께 했다. M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이들이 사랑했던 산과 고미영 그 자체였다. 자신의 꿈을 상징하는 이 목걸이를 고미영은 항상 부적처럼 지녔다.

2008년 봄 K2 등정에 성공한 두 사람. 그러나 이들이 하산하는 길에서 이들에게는 상상하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보틀넥을 지나던 순간, 세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던 것. 세락은 눈이 모여 만들어진 빙벽인데 지난 54년 동안 단 두 번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이날 3번째로 무너졌던 것,

세락은 원정대를 덮쳤고 그렇게 고미영과 김 대장과 함께 했던 한국 원정대원 3명과 셰르파 2명, 외국 원정대까지 총 11명 이 사망하는 고산등반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되고 말았다.

이 일로 충격에 빠져 힘들어 한 김 대장. 그러나 고미영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49재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다음 목표를 향했고 마나슬루에 올라 대원들과 함께한 사진을 놓고 돌아왔다.

7 등좌 완등 후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이 고미영에게 집중됐다. 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고미영은 김 대장에게 미안해했 다. 그는 "대장님이 모든 계획을 짜고 난 그저 이를 악물고 정상에 오른 것뿐인데 나 혼자만 영광을 차지하는 거 같아서 너무 미안하다"라며 눈물을 흘렸던 것.

김 대장은 빛을 온몸으로 받는 고미영의 그림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항상 챙겼고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도 두터워졌다.

이후 한 시즌 3 등좌 완등에 성공한 두 사람. 두 사람 앞에는 때때로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고난이 닥쳐왔다. 하지만 이들은 둘만 산에 남은 상황에서도 서로의 몸에 로프를 묶고 서로에게 의지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는 마음으로.

14좌 중 10개의 산 등정에 성공하고 이들이 향한 곳은 낭가파르바트, 이곳은 킬러 마운틴이라 부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무사히 11번째 등정에도 성공했다.

야간 하산 중 악천후 만난 원정대. 그리고 김 대장은 고미영이 추락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베이스캠프를 불과 100미터 앞둔, 로프가 없던 5미터 구간에서 발생한 사고였던 것. 특히 이 구간은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사람들은 아무 문제 없이 내려오는 곳이었기에 더욱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고미영은 순식간에 협곡 아래로 사라졌고, 이 소식은 고미영의 가족들에게 전해졌다. 늘 산에 오를 때마다 절대 죽지 않고 반드시 살아오겠다던 고미영. 이에 가족들과 원정대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다음 날 헬기를 동원해 수색이 시작됐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같은 상황에 고미영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결국 연료가 떨어져 돌아가려던 그때 김대장은 갑자기 뒤를 돌아봤고, 그때 고미영을 발견했다.

 

 故 고미영, 14좌 중 11좌 완등에서 멈췄다

 

 

 

 

 

'꼬꼬무' 목숨을 건 구조작업 다시 보기

 


정상을 바라보는 자세로 누운 고미영은 무려 천 미터 가까이 추락해 생존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시신은 수습해 야 했고, 헬기도 접근하기 어려운 이곳을 김 대장과 원정대원들이 직접 접근했다. 그리고 팀원들이 고미영의 시신을 번갈아 안고 하산했다.

고미영의 시신을 수습한 김 대장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혼자 죽게 두지 않겠다던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하다고 오열했다.

그렇게 고미영의 도전은 14좌 중 11좌 완등에서 멈춰야 했다.

 

꼬꼬무-故고미영-이야기-재조명
꼬꼬무 '故고미영' 이야기 재조명

 

 

시간이 흐르고 김 대장은 고미영의 이니셜 M 목걸이를 걸고 12번째 봉우리를 향해갔다. 그는 "혼자 살아남았으니까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라도 나머지 세 봉우리는 안전하고 완벽한 등반을 하겠다. 그리고 당신에게 8천 미터 14개 봉우리를 선물하겠다. 영혼이 있다면 지켜봐 달라"라며 안나푸르나를 향해갔다.

사망률이 1위, 세 명중 한 명이 죽는 안나푸르나에서 산사태를 만난 김 대장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겨우 목숨을 건졌다. 다음을 기약한 그는 다음 목표지였던 가셔브롬 1봉, 2봉 가장 높은 곳에 고미영의 사진을 묻고 2011년 봄 안나푸르나 등정에 재도전했다.

고난 끝에 마침내 정상에 선 김 대장은 고미영이 못다 한 14좌 완등의 꿈을 대신 이루고 4년 동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높이 보다 어떻게 가느냐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한 산, 그리고 저마다의 꿈. 김 대장과 고미영은 서로가 있었기에 이 꿈을 이 룰 수 있었다.

원정 대장과 대원, 도전자와 매니저, 같은 꿈을 꾸는 동반자로서 어떤 로프보다 질긴 두 사람의 관계는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대장은 고미영에 대해 "계속 기억하고 싶다. 하지만 슬프게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항상 웃고 씩씩했던 모습 그대로 기억하고 싶다"라며 웃어 보여 눈길을 끌었다.



 

 

자료출처 : https://ent.sbs.co.kr/news/article.do?article_id=E10010266432&plink=ORI&cooper=NAVER